여자는 매일 밤 어른이 된다 by kimmi

김신회


p.61-62
<사과하기와 용서하기>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미움받는 일보다 더 사람을 괴롭히지 않던가. 누군가의 사과를 받아주는 일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겠다는, 일종의 결단 아니겠는가.
오늘 밤, 나는 나를 위해 사과했지만 그는 우리를 위해 나를 용서했다. 누구에게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알 것 같아서 창피하기만 하다. 그가 쓴 모든 문장이 가슴을 쿡쿡 찌른다.



p.95
<내 생일>
누가 축하 같은 거 안 해줘도
근면하게 한 살씩 먹어가는 어른 하나가 있을 뿐.

그래도 오늘은 아직 남았다.
어쨌거나 축, 생일이야.



p.120
<어른의 밤>
하고 싶은 일의 순서를 나열하던 밤이
하지 못한 일들을 되새기는 시간이 됐다.
몇 년이 더 지나야 마음대로 살 수 있는지를 세어보던 밤에
오직 마음 하나를 지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긴 목록을 떠올리며 뒤척인다.

억울한 일은 그때보다 더 늘어나 있고,
내 것이 되지 못한 것들이 여전히 마음을 괴롭힐 줄은
여전히 상처에 강해지지도,
눈물에 익숙해지지도 않았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루지 못한 소원, 지키지 못한 약속, 털어놓지 못한 고백,
진실로 변하리라 믿었던 거짓말을 가슴에 담고,
차라리 이 모든 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넘어지더라도 무너지지는 않아야 한다는 걸 아는 나이에도
어김없이 넘어지고, 무너지면서, 아이였을 때 겪었던
막막한 밤은 어른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p.186
<24시간 영업을 바람>
하루 중 어떤 시간이든 원하는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점이 있다면. 잠 안 오는 밤에 갓 손에 쥔 신간의 첫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면, 눈 오는 밤에 서점에서 책을 읽으며 흰 눈이 가득 쌓인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면, 분명 우리는 책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p.292
<소심한 용기>
밤이 되어 갑자기 부여받은 용기  때문에 우리는 몇 시간 전까지 생각도 못한 짓을 저지르고 매혹적인 모든 것 앞에서 무너진다. 신중함과 머뭇거림 대신 무계획과 자신감으로 선택과 행동에 거침없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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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밤의 용기에라도 기대고 싶은 밤이 있다. 분명 아침이 오면 후회할 테고, 스스로가 밉고 원망스러워지겠지만 마치 독한 술에 정신을 놓아버리듯 밤의 용기에 잠식당해버리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런 밤에는 용기조차 가까이 다가와주지 않는다. 밤마저도 용기를 내지 않는 날에는 대체 무엇데 기대야 하는 건지 그저 막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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